월요일, 12월 5, 2022

임백천, 방송계를 떠난 가슴아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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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임백천, 방송계를 떠난 가슴아픈 이유

편안한 진행과 뛰어난 말 솜씨로 아나운서들보다 진행을 더 잘하다 보니 본업인 가수보다 진짜 아나운서로 착각할 정도로 대한민국 mc 1순위인 임백천은 지난 40여 년간 수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명실상부 국민 mc로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방송인으로서 임백처는 그 어렵다는 연예계에서 누구보다 오랜 기간 동안 살아남아 어느덧 44년 동안이나 현역 방송인으로 생활하며 최고의 mc로 자리매김했으나 그러나 인생사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정작 인간 임백천의 삶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임백천
임백천, 방송계를 떠난 가슴아픈 이유

그는 한때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과 친분이 깊어 정권 코드 맞추기 당사자로 지목받아 간부의 제의도 뿌리치고 미련 없이 방송 일을 그만둬야 했고 심지어 쫄딱 망한 글을 아무도 찾지 않아 다른 길을 선택하며 딸아이의 자폐장까지 퍼지고 말았던 임백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1958년 전라남도 순천에서 삼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난 임백천은 5살 때 서울로 상경해 베이비붐 세대답게 초등학교 시절 1600여 명의 개티 동기들과 콩나무 시루 같은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게 됩니다.

이처럼 당신은 학생 수가 너무 많다. 보니 수업을 빼먹고 영화를 보러 다녀도 선생님께 들키지 않았으며 그렇게 땡땡이의 명수였던 임백천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폴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을 듣고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됩니다.

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516 군사정변을 맞으면서 격동의 청소년기를 보내야만 했고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제1회 대학가요제 때 대상곡인 서울 데트리오에 젊은 연인들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아 원래는 대학 갈 생각이 없었는데 이 노래를 듣고 대학 진학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렇게 대학교 1학년 때인 1978년 제2회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무려 800대 1의 살벌한 경쟁을 뚫고 심수봉 배철수 노사연 등과 함께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되었고 이후 같은 해에 mbc 장병호 pd의 눈에 띄어 젊음이 있는 곳에 사회를 맡으며 마침내 방송 진행자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한편 당시만 하더라도 방송 진행자라고 하면 연륜과 지성을 겸비한 차인태 같은 사람이 mc로 활약하던 시대로 그런데 20살을 갓 넘은 대학생이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며 일각에서는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장명호 피디는 대학 가요제를 계기로 커지기 시작한 젊은이의 힘과 문화를 발 빠르게 수용하기 위해 그를 기용했고 결국 이것이 정확하게 드러나자 커다란 호응을 얻으면서 이후 여러 방송사들도 앞다퉈 젊은 mc인 임백천을 섭외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그는 인기에 힘입어 라디오의 dj까지 맡으며 당시 라디오가 전부였던 청소년들에게 매일 수백 통의 펠레터를 받으며 지금의 아이돌 가수 못지 않은 사랑을 받게 되었고 그렇다 보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종일 방송국 앞에서 죽치고 기다리는 요즘 흔히 말하는 생팬 같은 여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사생팬을 넘어 집까지 찾아오는 스토커 팬들도 많았는데 그러나 그는 그런 여학생들을 보면 귀찮아 하거나 혼내기보다 이웃집 여동생 같으니까 떡볶이를 사주고 차비도 쥐어주며 오빠의 입장에서 잘 달래서 집으로 보내곤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랑을 받던 그였지만 그럼에도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그 많던 방송 활동을 접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건설회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실 대학 시절 내내 학업과 방송 활동을 병행하며 재미있고 즐겁게는 보냈지만 당신은 아르바이트로 여겼을 뿐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기에 4학년 때 아나운서로 입사하라는 방송국 간부의 제의도 뿌리치고 미련 없이 방송을 그만두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6년간 건설회사에 다녀보니 건축보다는 방송이 자신에게 더 잘 맞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나이 서른에 다시 mbc 프로그램을 맡으면 mc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렇게 6년 만에 mc로 복귀했으나 하지만 그가 맡은 프로그램이 시대적 분위기가 맞지 않아 결국 6개월 만에 막을 내리는 아픔을 맛봐야 했고 설상가상 이후부터는 쫄딱 망한 글을 아무도 찾아주는 이가 없어 결국 이때 인기곡을 내놓으면 또다시 나를 찾겠지 하는 얄팍한 생각으로 노래를 발표하게 됩니다.

그 노래가 바로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마음에 쓰는 편지이며 결국 이 노래로 그는 가수로서만이 아니라 방송 mc로도 재개하며 방송 3사 인기 프로그램들의 mc로 맹활약하게 됩니다.

그러다 1990년 당시만 하더라도 존재하던 mbc 공채 mc 1기였던 지금의 아내 김현주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런데 당시 아내가 서울대 화학과 출신에다가 88올림픽 때 우정의 사절로 뽑힐 만큼 재색을 두루 갖추고 있다. 보니 처음에는 분명히 애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제대로 된 데이트조차 신청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함께 방송을 하며 점차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그리고 이때 8살의 나이 차이가 화제가 되는 동시에 임백천이 아깝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죄다 김현주가 아깝다는 반응으로 심지어 김현주의 부모님조차 연주야 네가 너무 아깝지 않니 라며 안타까워하곤 했습니다.

아무튼 이후부터 임백처는 정말 지금의 유재석만큼이나 tv를 틀었다 하면 나온다고 해서 한때 방송계에 수도꼭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고 또한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중 하나인 서태지와 hot를 가장 처음 소개하며 그가 소개하면 국민 가수가 된다는 국민 가수 지명 mc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모두의 사랑을 받는 국민 mc다 보니 한 때 그는 무려 세 번에 국회의원 출마 권유까지 받게 되는데 그러나 이런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나는 우리 식구 검사하는데도 쩔쩔 맨다며 거절 의사를 밝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오랜 친구인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과도 친분이 깊다. 보니 지난 박근혜 정권 때는 정권 코드 맞추기 개편의 당사자로도 지목받기도 했는데 하지만 당시 그는 오히려 본인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게 됩니다.

그가 고백하기로는 대통령 동생과 친하면 모두 친박인가 나는 친박이 아니라 친박지만이다. 김대중도 찍었고 노무현도 찍었던 사람인데 어느 순간 어디선가 그렇게 분류가 된 모양인데 수십 년 넘게 지켜온 우정을 버리란 말인가 라고 했습니다.

또한 박지만과의 사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가 대답하기로는 내게 참 좋은 친구로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이다. 워낙 비범한 아버지와 누나를 둬서인지 오해가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동갑내기 친구들과 서울 강남의 한 허름한 지하방에서 집안일을 가끔 보는데 그런데 거기도 무슨 멤버십이 있는 클럽이라고 추측성 보도가 심하게 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거기에 가는 이유는 술값이 다른 곳에 비해 싸고 여자가 안 나오기 때문으로 나중에 기자들이 직접 와서 확인하더니 더는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한편 임백천근은 아내와 아이들이 5년간 미국으로 떠나면서 한때 외로운 기록이 아빠를 해야 했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아들이 한 방송을 통해 아빠는 엄마 목소리에 꼼짝 못한다 우리 집에서는 엄마 목소리가 제일 큰데 집에서 다투면 엄마가 소리를 바박 지른다라고 말하며 임백천에게 의외로 공처가 기질이 있는 것을 공개하게 됩니다.
이처럼 인벡처는 방송을 통해 아들을 공개했지만 이상하게도 딸은 공개하지 않자 일각에서는 그의 딸이 자폐가 아니냐라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고 심지어 이상호 아이랑 같은 선생님 밑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떠돌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임백천가가 고백하기에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기 자신이 보잘 것 없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게 아닌가 싶다. 청춘 시절엔 내가 제일 잘난 줄 알고 방방 뜨고 그랬는데 돌아보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나이를 먹어 생각해 보면 나의 젊은 시절이 얼마나 치기 어린 시절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좋은 추억이고 재미있는 시절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조용필 씨를 참 좋아하는데 조용필 씨의 10분의 1만큼만 실력이 됐어도 모든 것을 접고 노래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만한 실력이 안 되고 또한 나에게는 방송이 천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를 쓰겠다는 사람이 있는 한 하는 데까지 방송만 하다가 은퇴할 생각이다 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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